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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선생님의 글과 애송하시던 성경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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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
제목 주님의 피 한 방울
작성자 frjango
작성일자 2015-03-24
조회수 1662

주님의 피 한 방울


1980.8.13.
김준호 선생

글 정리: 연산 김종복



우리 수도원에만 묻어 준다면 이 수도원은 성화의 불이 될 것이다. 내 가슴에 예수의 피 한 방울만 떨어진다면 나는 성녀가 된다고 하는 그 희망 때문에 칠십 년 팔십년 늙도록 기도한다고, 그렇게 고백들 하고 있어요. 수도원에 들어가서 직접 수도사가 되면 무슨 비밀이 있냐?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예수님의 피를 우러러 보고 사모하는 마음, 우리 주님의 피가 내 가슴에 한 방울만 떨어진다면 내 평생에 지은 죄는 깨끗이 닦아주시고 내 영혼은 구원 받습니다. 주여 제게 피 한 방울 주소서 하는 그 열렬한 사랑을 애모(愛慕) 하는 것. 그런 시간을  특별히 많이 갖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알고 보면 허망할지 몰라도 참 순수한 사랑이 있다면 아무리 나무에 묻었을 지언정, 사랑하는 자기 임의 피가 그 나무에 묻었을 때 직접 그것을 보았던 막달라 마리아의 가슴에는 살아있는 예수님과 똑같지 않았겠어요?


 

 하늘나라 가신 다음에, 사랑은 시간도 초월하지만 몸도 초월하고 기념만이라도 예수님을 직접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늘나라 가신 다음에도 십자가에 뭍은 피만 자기가 달아봐도 전기가 오듯이 뜨겁지 않았겠어요? 감격이 되어서, 감격해서 자기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았겠지요? 그러니까 어디 가면 무슨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순애(純愛) 깨끗한 사랑을 예수님께 받을 수만 있다면 많이도 말고 찰나 똑딱하는 시간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어도 나는 성인이 된다나는 성녀가 된다라는 희망 그것이 수녀들의 희망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렇게 육신을 갖은 사람들이지만, 계명! 예수님의 계명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형제를 위해서 자기도 그렇게 예수님처럼 사랑만 있다면 인생은 성공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바는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시라고 기도할 제목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서 예수님의 순수한 사랑을 자기가 받아들였을 베드로 선생님이 설교하시던 설교만 보더라도 우리가 직접 예수님을 본받기 보다는 베드로 사도를 본받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듭디다. 어제 말씀드렸지만 사도행전 3. 저로서는 처음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3장에 있는 말씀을 어제 하다가 조금 덜했다고 했는데 오늘 거기 대목을 다시 봅니다. 시간이 조금 적고 그러니까 제가 직접 읽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똑바로 보며우리를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성전 앞에 있었던 불구자 거지이지요. 베드로는나는 돈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가슴이 울리고 본받고 싶어요. 우리는 돈도 없는 사람들이 돈이나 있는 것처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같애요. 우리도 베드로 같은 깨끗한 마음만 지녔다면 아니요, 참말로 그렇게 그런 한번 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돈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말 한자리가 어떻게 부끄러워서 못하고 일생을 그렇게 돈이 있는 것처럼 살다가 죽지 않습니까?

 ​  자기 정체를 안다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다음에는 모두 자기의 것이 나는 없다. 나는 사랑도 없고 돈도 없고 베드로라는 나도 없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밖에 없다. 자기의 절절이 흐르는 예수의 사랑 나는 없다. 나는 돈이 없다. 그럼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기가 서울 마음을 먹을까요너무나 뻔뻔한 생각 아닙니까? 일전 일푼도 없는 식구들이 서울에 가야겠다.’ 그거 자기 과신 아니에요? 동광원에 오래 계신다는 할머니들도 아주 뻔뻔해요. 나는 어디 가고 싶다. 그러고 간단 말씀입니다. 그럼 거기 돈을 가지고 차표를 샀을 가사 같은 사람 저를 두고 하는 소리인데 얼마나 많은 이름 모를 식구들의 피가 더했냐 말씀입니다. 차를 샀기 때문에 못났기 때문에 그들은 어디를 갈수도 없고 차도 타는데 뻔뻔한 사람들이 서울 간다 때는 돈이 없으면서 가면 남의 돈으로 간단 말씀입니다. 얼마나 많은 불쌍한 신자들의 돈이 녹아 났나 말씀입니다. 주머니의 돈이 녹아 났나 말씀입니다. 베드로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했을까? 그런 말부터 가슴이 울려와요. 베드로 선생을 받아야겠다.

 가사(가령) 특별히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부터, 저로부터 모든 식구가 얼마나 자기 과신에 빠져있는가 과대망상이랄까요? 없는 사람들이 참말로 베드로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자기가 어떻게 옷을 입을까? 자기가 무슨 돈이 있어서 옷을 입을까? 생각만 해봐도 죄가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소화 데레사 같은 성녀는 송이만 쳐다보고 자기가 곱다는 생각만 품었어도 평생 자기가 눈물이 나는 죄거든요. ‘주님 저는 피조물을 사랑했어요. , 저는 잘못했어요.’ 그리고 울어주던 눈물 순수한 사랑의 눈물 아니겠어요? 저는 어린 나이에 리본에 꽂으려고 송이를 꺾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황송해요. 너무나 잘못했어요. 죄를 용서해 주세요. 무슨 죄가 있어서 죄를 졌어요. 사랑이 깨끗해질수록 예수님을 사모한 것이 죄거든. 예수님만 사랑하라고 태어난 몸인데 예수 아닌 피조물을 사랑했다는 부끄러움 얼마나 부끄러우면 그렇게 울었을까요?

   

베드로는 나는 돈이 없습니다. 같이 한번 말씀 배워서라도 그렇게 살도록 따라합시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만 말할 있는 사람이 된다면 혹시 불쌍히 보고 누가 차비를 줘서 준다면 감격할 테지요. 나는 돈이 없는데 당신이 무슨 돈으로 차표를 사주십니까?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나는 평생에 은혜를 갚겠어요. 내가 죽어서라도 갚겠으니까 우리 예수님께 빌어서 당신이 영생하도록 빌어드리겠습니다. 어느 수녀의 차비를 드릴 수만 있다면 영혼은 구원을 받아요. 수녀가 순수한 사랑으로 예수님께 부탁해서 나를 저분이 차비를 줘서 서울 가게 되었어요. 저는 돈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해 주세요. 피를 바치겠습니다. 그럴 아니겠어요? 그러기 때문에 돈이 없는 갈멜 수녀원에는 모든 속세의 영혼들이 자기 영혼을 위해서 빌어달라고 모두 밥과 옷을 갖다 줘요. 그러기 때문에 수도원은 부자가 되잖아요? 되고 싶어서 부자가 되겠습니까? 자기 영혼이 구원 받고 싶어서 돈이 없는 수녀들에게 감화를 받아가지고 돈을 쓰시고 나를 위해 빌어주십시오. 그걸 누가 반대 하겠습니까? 나는 돈이 없습니다.​​   ​

   

 가사 한자리만 우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다되지 않아요. 베드로를 받아서 그럼 자기가 서울 가는데 차표를 사줬는데 차표를 사준 사람의 은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남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을까요? 가사 나는 돈이 없습니다. 사랑을 심었을 일이 되는 겁니다. 사랑을 지닌 사람의 마음 , 자기 한마디를 들어보면 사람의 일생의 비밀을 있지 않아요? 나는 돈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베드로의 한마디만 들어 봐도 베드로의 영혼을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의 인품을 있단 말씀입니다. 그는 과연 예수님의 종이었다. 그러나 내가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걸어 다니시오. 깨끗한 사랑이 있을까요? 걸어 다니시오 이렇게 말이 아니고 진실한 말만 있다면 불구자가 걸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하노니 걸어가시오. 그렇게 말하는 쉽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걸어가시오. 내가 말씀 있는 일은 이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할 있을 지금도 베드로 같은 사람이 우리 사이에 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면 앉은뱅이가 걸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인물이 없는 것이 부끄러워요. 하고 말한 다음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당장에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걷기도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런 대목입니다. 이런 대목을 처음으로 봤어요. 요사이 여기 오기 전에, 어떻게 이런 대목을 보니까 과연 베드로 선생을 본봐야 하겠구나. 천년만년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자선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돈이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데리고 말씀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사랑으로 드립니다. 찬물 한잔을 받으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사랑만 있다면 여기에 모인 불쌍한 형제자매들이 천국자리가 아니겠어요? 끼를 해드리면서도 이것은 저는 쌀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해드리는 밥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잡수십시오. 그렇게 눈물겹게 드릴 수만 있다면 밥을 먹은 모든 환자들이 성화를 받고 성인이 되지 않겠습니까?